[Re:Talent 순례] 구독자 여러분, 도앙골 성지에 대해서 아시나요? 충남 부여의 깊은 산세 속에 숨겨진 이 작은 교우촌 터는 화려한 건물은 없지만, 그 땅이 품은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곳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두 거인,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와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죠. 시간을 되돌려, 두 성인의 발자취가 교차하는 도앙골의 깊은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주의사항
성지를 직접 방문하고 쓴 글입니다. 방문 당시와 글 쓴 시점의 최신 정보를 최대한 반영하였으나, 이 후 방문 시에는 변동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문의처는 041-836-9625입니다.
- 도앙골 성지는 경당이 없는 곳이지만 전화로 예약할 경우, 오후에 미사 봉헌이 가능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삽티성지에는 경당이 있어 미사 봉헌 가능합니다.
- 도앙골과 삽티 간에 도보 순례가 가능합니다. 도보 순례에 대해 도움이 필요하시면 위의 문의처에 요청하세요.
- 성지 내 주차비와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성지로 들어오는 길과 주차장이 그리 넓지 않으니 되도록 소형 차량을 이용하시는게 좋습니다.
목차
도앙골 성지, 깊은 산골의 교우촌
도앙골 성지는 지금 찾아가기에도 그리 쉬운 곳이 아닙니다. 차를 타고 좁은 길을 따라 깊숙히 들어가다보면 정말 여기에 성지가 있는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죠. 하지만 그시절 천주교가 박해받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생존을 위한 것이었음이 이해가 됩니다. 도앙골은 당시 행정 구역상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깊은 오지였지만, 신앙인들에게는 하느님을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을테니 말이죠.
1) 왜 하필 도앙골이었을까?
부여, 보령, 서천의 3개 시군이 맞닿은 월명산 아래 깊은 계곡이라 관군의 눈을 피하기 쉬웠을 겁니다. 거기에 산길이 맞닿은 계곡의 막다른 지점으로 하부 내포 산간 지역에 숨어 살던 신자들과 연통하기도 쉬웠겠죠.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활동이 남긴 교우촌
도앙골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이존창 루도비코입니다. 그는 한국 천주교 초기 전교의 핵심 인물로, 충청도 지역에 신앙의 씨앗을 뿌린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1) 홍산 지역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룬 곳
기록에서는 신해박해(1791년) 때 체포된 이존창이 충청 감영인 공주에서 풀려난 후엔 고향 여사울을 떠나 피신한 곳이 홍산이라고 합니다. 도앙골은 삽티와 더불어 이 홍산 지역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룬 곳으로 추정됩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여사울 성지: 충청 첫 신자 이존창 고향]
2) 유산으로 남은 도앙골 교우촌
이존창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도앙골에 모여 살며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이존창 루도비코는 순교의 길을 걸었지만, 그가 남긴 신앙의 유산은 도앙골의 흙 속에 깊이 박혔지요. 박해시절 도앙골 출신의 순교자들이 기록에 다수 보이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의 기록
이존창이 씨앗을 뿌렸다면, 그 열매를 거두고 양들을 돌본 분은 바로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입니다. 도앙골은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최양업 신부님이 1850년 10월 1일, 9개월 간의 사목활동을 은사인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처음 보고하는 편지를 썼는데, 그때 머물렀던 곳이 바로 도앙골입니다.
1) 7,000리 길을 걷던 신부님의 안식처
최양업 신부님은 일 년 내내 조선 팔도를 누비며 전국에 흩어져 있던 127개 교우촌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거리가 자그마치 일 년에 걸어서 7,000리(약 2,800km)에 달했다고 하죠. 그런 신부님에게 도앙골은 잠시나마 봇짐을 내려놓고 신자들과 깊이 소통하며 다음 여정을 준비하던 소중한 안식처였습니다.
2) 최양업 신부님을 기리며 시성을 기원하는 장소
비좁은 공소 건물,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집전되었을 최양업 신부님의 미사를 상상해 보세요. 땀에 젖은 수단과 거친 손, 하지만 그분 앞에 모인 교우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을 것입니다. 그시절 신부님과 교우들이 하나되어 미사를 드렸을 이 교우촌에는 기도의 집인 ‘우애의 집’과 신부님의 시성을 기원하는 ‘탁덕 최양업 시성 기원비’가 서 있습니다.

역사 속 도앙골 성지
- 1866년 병인박해 때, 도앙골 성지에 살던 오 요한, 김 사범, 김 루카, 김 바오로, 오 시몬 등의 교우들이 공주 감영으로 잡혀가 치명당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신 다블뤼 주교님을 포함한 성인 4위의 유해를 서짓골 신자들과 함께 서짓골에 수습했습니다.
- 박해 때문에 흩어졌던 교우들은 1890년에 다시 모여 도앙골 공소를 형성했고, 이 공소는 1970년대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오늘날 도앙골에서 만나는 것들

오늘날 도앙골 성지에 들어서면 근사한 성당 건물 대신, 마을 끝자락에 고요하게 자리 잡은 성지 부지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이곳에는 소박한 야외 제대와 탁덕 최양업 시성 기원비, 성지의 역사를 전하는 단촐한 안내판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순례자로서 작은 성취의 기쁨을 기록하게 해주는 순례 인증 스탬프함과 작은 주차장이 딸린 ‘우애의 집’이 성지를 지키고 있죠.
성지 전체를 둘러보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우애의 집’은 실제 누군가 거주하시는 듯한 생활의 흔적이 있었고,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해서, 야외 제대 앞에서 잠시 기도와 묵상을 한 후, 순례 스탬프를 찍고 돌아왔습니다.

깊은 산속이라 그런지 계곡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간 날은 화창한 날씨 덕분에 주변의 푸르름이 더욱 눈부시게 빛나던, 그야말로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도앙골에서 삽티까지 도보 순례길

도앙골 성지 자체는 아담하지만, 조금 더 깊은 순례를 원하신다면 삽티 성지까지 이어지는 도보 순례를 추천합니다. 두 성지 사이의 산길은 약 3.5km로, 성인의 숨결을 느끼며 천천히 걷기에 딱 좋은 45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만약 걷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다면 차량 이동도 가능합니다. 차로는 10km 이내의 가까운 거리이니, 시간이 되신다면 삽티 성지까지 들러보시는 건 어떨까요? 도앙골에서 시작된 평화로운 기운을 삽티에서 마무리하는 여정은 여러분의 순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삽티 성지: 성 황석두 루카 유해 머문 거룩한 땅]
마치며: 3대 하부 내포 성지 중 하나, 도앙골
도앙골 성지는 삽티 성지, 서짓골 성지와 함께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3대 하부 내포 성지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는 웅장한 기념관도,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은 오히려 이존창 루도비코의 열정과 최양업 신부님이 흘린 땀방울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습니다. 도앙골에서의 순례가 그 옛날 교우촌 사람들이 품었던 고귀한 신앙심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1) 도앙골 성지와 삽티 성지는 어떤 관계인가요?
도앙골과 삽티는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 경로상 매우 가깝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앙골이 비교적 이른 시기의 사목 거점이었다면, 삽티는 그 이후의 교우촌 형성과 관련된 중요한 장소입니다.
2) 이존창 루도비코가 직접 도앙골에 살았나요?
이존창이 이곳에 직접 거주했다는 명확한 기록보다는, 그의 강력한 전교 활동으로 인해 이곳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그가 닦아놓은 터전 위에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이 이루어졌다는 인과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3)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네, 매우 좋습니다. 자연 교육은 물론, 우리 조상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 가치를 지켜냈는지 가르쳐줄 수 있는 훌륭한 역사 교육의 현장입니다.
4) 성지 내에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나요?
야외 제대가 마련되어 있으며, 단체 순례의 경우 사전에 문의처 041-836-9625 으로 문의주시면 미사를 봉헌할 수 있습니다. 근처 삽티 성지에는 성당 건물이 마련되어 있어, 여기서 미사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같은 문의처로 연락주세요.
5) 겨울에 방문해도 성지를 볼 수 있나요?
겨울 산골의 정취가 매우 아름답지만, 눈이 많이 올 경우 산길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기상 정보를 꼭 확인하고 방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