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alent 순례] 구독자 여러분, 혹시 배나드리 성지라는 이름 들어보신 적 있나요? 홍수가 나면 배가 드나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 순우리말 지명은 발음할 때도 물이 흐르는 듯한 순조로운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 소박한 이름 뒤에는 기꺼이 순교에 응했던 인언민 마르티노의 사연이 서려있습니다. 땅 위에 정성스럽게 수놓인 십자가 조경을 따라 걸으며, 기쁜 마음으로 목숨을 바친 인언민 마르티노의 고백을 여러분의 가슴에 선명히 각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주의사항
성지를 직접 방문하고 쓴 글입니다. 방문 당시와 글 쓴 시점의 최신 정보를 최대한 반영하였으나, 이 후 방문 시에는 변동 사항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관할지 삽교 성당의 사무실 연락처는 041-338-1924입니다.
- 배나드리 성지에서는 정규 미사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단체 방문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관할지인 삽교 성당에 연락하세요.
- 성지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의 출입구가 자물쇠로 잠겨 있지 않으면 열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 관할 성당이 성지 바로 근처에 있지 않더라도 이곳은 가톨릭 성지입니다. 복장을 단정히 해주시고, 큰소리를 내지 말아주세요.
목차
배나드리 성지의 가치
배나드리 성지는 지리적으로 삽교천의 물줄기가 닿는 낮은 지대입니다. 과거에는 실제로 배가 오가던 나루터였지만, 박해의 칼날이 매섭던 시절 이곳은 신자들이 세상의 풍파를 피해 모여 살던 교우촌이었습니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돌아온 배가 항구에서 쉼을 얻듯, 고단한 삶을 살던 신자들은 이곳에서 하느님이라는 영원한 항구를 만났습니다.
배나드리는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의 출생지입니다. 황사영 알렉시오에게 천주교 신앙을 접하고 교리를 배운 인언민 마르티노는 한양에서 주문보 야고보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공주로 이주하여 생활하다가 붙잡혀 해미 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인언민 마르티노는 죽음에 이르면서도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천주님께 바치는 거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말은 오늘날 성지 내 비석에 새겨져 이곳을 방문하는 순례객들에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여사울에서 시작된 신앙의 물줄기
배나드리는 홀로 존재하는 성지가 아닙니다. 충청도 첫 신자 이존창의 고향인 여사울 성지에서 시작된 신앙의 불꽃이 이곳 배나드리로 이어졌습니다. 이존창이 뿌린 씨앗이 인언민이라는 굳건한 나무를 키워낸 셈이죠. 내포 신앙의 네트워크는 이처럼 촘촘하고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대지 위에 그려진 거대한 기도: 십자가 조경
성지에 발을 들이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정갈하게 가꾸어진 정원입니다. 그런데 이 정원에는 특별한 비밀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하늘에서만 보이는 온전한 십자가
돌제단 주변을 감싸고 있는 조경수를 보면 뭔가 모양이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자세히 보면 십자가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돌제단이 십자가 가운데에 위치한 형태죠. 하늘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면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조경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 고백과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묵묵히 걷는 평범한 삶일지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하나의 완성된 십자가를 그려나가는 과정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순례객을 위한 편의 시설
배나드리 성지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순례객들이 인언민 복자의 정신을 새기고, 신앙에 대한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하도록 편의 시설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아닌, 오로지 나 자신 및 순교자와 대화를 주고받는 고요한 공간입니다.
1) 넓은 주차장 및 화장실
도로 쪽 표지판이 있는 곳에 넓은 주차장과 화장실을 마련해 두어, 순례객의 편의를 더했습니다. 대형 차량이라면 이곳에 주차하시고, 소형 차량이라면 더 안쪽으로 들어가셔서 성지 앞에 차를 주차할 수 있습니다.
2) 순례자 스탬프 위치
순례 책자에 스탬프를 찍는 것, 여기서도 놓치지 마세요. 성지마다 다양한 디자인의 스탬프를 배치해 두지만, 이곳의 스탬프는 유독 기억에 남았어요. 성지의 십자가 조경을 심플하게 담아냈거든요. 이곳만의 독특한 스탬프 인영은 내 성지순례 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마치며: 배나드리, 당신 영혼이 정박할 항구
배나드리 성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당신의 배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고 말이죠. 화려한 쌍탑을 자랑하는 합덕성당이 우리 신앙의 찬란한 결실이라면, 배나드리는 그 결실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내던진 순교자의 뿌리와 같습니다. 이번 주말, 대지 위에 그려진 거대한 십자가 위를 걸으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뜨거운 첫 마음을 다시 깨워보는 건 어떨까요?
배나드리 성지 방문자를 위한 FAQ
1) 배나드리 성지까지 가는 길은 편리한가요?
충남 예산군 삽교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자차 이용 시 편리합니다. 다만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배차 시간을 미리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예산버스터미널에서 563번(삽교, 용동행) 버스에 승차하여 용동 2리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됩니다.
2) 십자가 조경을 지상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성지 내에 높은 전망대는 없지만, 야외 제대 인근의 야트막한 언덕이나 성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성지 끝자락에서 그 흐름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3) 인언민 마르티노 순교자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자료가 있나요?
성지 내 안내판과 사무실에 비치된 팸플릿을 통해 그의 생애와 순교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서산 해미순교성지와 연계하여 공부하시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합니다.
4) 인근에 함께 둘러볼 만한 성지가 추천해 주세요.
충남 예산에는 대흥봉수산 성지와 여사울 성지 두 곳이 있습니다. 또한, 가까이 당진에는 솔뫼성지, 신리성지, 합덕성당과 같은 유명한 성지도 있습니다. 이곳을 함께 묶어서 순례하시면 내포 신앙의 역사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완벽한 코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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