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alent 순례자 여러분, 이번 글에서는 원머리 황무실 성지 2곳을 한번에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혹시 화려한 성당 건축물이나 웅장한 기념관이 없는 성지에 갔을 때 실망하셨나요? 이곳들도 근처의 공세리 성당, 신리성지처럼 예쁘고 유명한 성지는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가 찾아야 할 순교자들의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방문객의 발길이 뜸해서 오히려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한, 작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은 이 숭고한 사적지들의 가치를 다시 확인해 보세요.
*주의사항
성지를 직접 방문하고 쓴 글입니다. 방문 당시와 글 쓴 시점의 최신 정보를 반영하여 글을 쓰고 있으나, 이 후 방문 시에는 미사 시간 및 운영 시간에 변동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원머리 성지 (신평성당 관할) 사무실 연락처는 041-363-6761,
황무실 성지 (신합덕성당 관할) 사무실 연락처는 041-362-5947입니다.
- 두 곳 모두 순례자 미사가 가능하니 사무실에 전화로 문의해 주세요.
- 두 곳 모두 천주교 순교 사적지이므로 경건한 마음과 단정한 복장으로 참례해주세요.
- 원머리순교자 현양 월례미사나 황무실 순교자 신심미사의 경우, 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반드시 사무실에 먼저 문의해 주세요.
목차
원머리 황무실 성지, 소박하고 고요한 땅
[Re:Talent 순례]에서 다루는 성지 중에서도 원머리 황무실 성지는 소박한 편에 속하는 성지입니다. 성지를 방문했을 때,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번듯한 성전이 있기를 기대했다면, 원머리 성지와 황무실 성지에 도착하는 순간, 교구청에서 지정한 성지라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이곳에선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장식 대신,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흙과 바람, 그리고 순교자들의 체취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건축물의 화려함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면, 이곳의 소박함은 우리를 침묵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신앙의 힘은 땅속 깊이 뿌리 내린 순교자의 진토에서 나오는거 아닐까요?
1. 원머리 성지, 두 사촌 형제가 지켜낸 신앙의 묘역
원머리 성지는 ‘원머리’라는 정겨운 이름처럼 삽교천 인근 평야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 천주교의 시작과 함께 교우촌이 형성된 곳이고, 박해의 칼날 아래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두 분의 순교자,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가 나란히 잠들어 계신 곳입니다. 순교자 묘 인근에는 원머리 공소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1)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의 동행, 서덕행의 도움
사촌 형제 지간이었던 두 분은 1868년 무진박해 때 수원에서 함께 순교하셨습니다. 이 때 서덕행이라는 분이 시신을 몰래 거두어 원머리로 운구하였는데, 그 귀한 공로가 인정되어 사후에 순교자들과 함께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 사람의 묘역 앞에 섰을 때, 죽음 앞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걸었을 두 순교자의 동행과 그들에게 연민을 갖고 시신이라도 정성껏 챙겼을 서덕행님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2) 소박한 초가집 공소 강당 (with 정규 미사 시간)
묘역 옆에는 초가 지붕을 얹은 정겨운 모양의 원머리 공소 강당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이는 과거 신자들이 모여 숨죽여 기도하던 교우촌의 실체를 보여주는 귀한 유산입니다.
제가 방문한 당일에는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어 공소 내부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매월 첫째 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원머리 순교자 현양 월례 미사가 봉헌된다고 합니다. 공소 내부의 고즈넉함까지 마음에 담고 싶으시다면, 미사 시간에 맞춰 방문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3) 원머리 성지 순례 스탬프 위치
원머리 성지 스탬프는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묘역 근처에 있는 작은 빨간 우편함처럼 생긴 보관소를 찾으면 됩니다. 다음 순례자를 위해 스탬프 사용 후 제자리에 놓아주세요.

4) 드론으로 바라본 성지 풍경
신평성당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원머리 성지의 겨울 풍경은 이 공간이 가진 평화로움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묘역과 공소 강당은 마치 세상의 모든 고통을 씻어내고 영원한 안식에 든 순교자들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이불 같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본 성지는 마치 대지 위에 그려진 한 편의 수묵화처럼 정갈하고 경건합니다.

2. 황무실 성지, 이름만 남은 터에서 만나는 신앙의 원형
원머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황무실 성지는 더더욱 비워져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어떤 건물이 서 있기보다, 과거 오래된 교우촌이었으며 프랑스 선교사들의 안식처였던 자리를 현재의 순교자 현양비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곳입니다.
1) 무명 순교자 배출하고 선교사가 선종한 교우촌
황무실은 한때 100여 명 이상의 신자가 거주하며 프랑스 선교사들의 중요한 안식처가 되었던 내포 지역 최대의 교우촌이었습니다. 메스트르 신부님과 랑드르 신부님 같은 선교사들이 이곳에 머물며 고아들을 입양해 가족으로 삼는 등 사랑을 실천했던 기록은, 이곳이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복음의 실천지였음을 증명합니다.
2)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순교자 현양비
지금은 당시의 집들도 사라지고 없지만 그 빈자리를 순교자 현양비가 묵묵히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 성심상과 성모상 사이에 우뚝 선 현양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오히려 건물이 없는 비어있는 공간이기에 우리가 상상하고 묵상할 수 있는 여백이 더 넓어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순교자 현양비 우측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 앞에 서면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기도문 외는 소리처럼 느껴집니다.
십자가의 길 너머에는 성지와는 관련없는 문중의 묘역이 있습니다. 성지와 일반 구역이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은 부분이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3) 황무실 성지 스탬프 위치와 미사 시간 안내
책자 위에 꾹 눌러 찍는 도장 한 장은, 비록 짧은 방문이었을지라도 순교자들의 삶에 잠시나마 발을 담갔다는 소중한 징표가 됩니다. 황무실 성지 쉼터 옆 스탬프 보관소에 들리는 것을 꼭 빼먹지 마세요. 이곳의 관리지인 신합덕 성당에서는 매월 첫 토요일에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오전 9시에 신합덕 성당에서 황무실 도보순례를 시작하며, 오전 11시에 황무실 성지미사를 봉헌합니다. 더 자세한 일정은 사무실에 전화해서 확인하세요.

마치며: 원머리 황무실 성지, 한번은 꼭!
우리는 흔히 크고 화려한 것에서 가치를 찾으려 하지만, 때때로 가장 소중한 진실은 아주 작고 낮은 곳에 숨어 있습니다. 원머리 성지의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 순교자 묘역이 그렇고, 황무실 성지의 빈터가 그렇습니다.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지 않아 고요하고,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 소박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오롯이 자기 자신과,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조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1) 원머리 황무실 성지를 하루에 다 둘러볼 수 있나요?
네, 원머리 황무실 성지, 이 두 성지는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차로 이동한다면 하루 안에 충분히 여유 있게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2)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이곳은 종교를 떠나 한국의 근대사와 민중의 삶이 녹아 있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사색을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평화로운 공간입니다.
3) 원머리 황무실 성지 주변에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을까요?
두 성지 자체는 매우 한적한 시골 마을에 위치해 있습니다. 따라서 가까운 합덕읍내나 신평면 소재지로 나가시면 정겨운 시골 맛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전에 솔뫼성지 안내 시 추천했던 당진의 ‘우렁이 박사’를 추천합니다. 원머리 성지와도 가깝습니다. 우렁이 박사 위치 및 메뉴는 이 글을 참조하세요.
4)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 지루하지 않을까요?
웅장한 볼거리는 없지만, 넓은 잔디와 평원, 그리고 정겨운 초가 공소 건물은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줍니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미리 들려주신다면 훌륭한 역사 교육의 장이 될 것입니다.
5) 겨울에 방문해도 원머리 황무실 성지를 제대로 볼 수 있나요?
네, 눈 덮인 원머리 황무실 성지의 풍경은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을 줍니다. 다만 시골길이라 눈이 많이 왔을 때는 운전에 유의하셔야 하며 방한 준비를 철저히 하시길 권장합니다.